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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선적인 프란치스코 교황의 바티칸-중국 협약: 종교적 타협의 그림자

RooneyWazzA 2025. 2. 11. 21:57

위선적인 프란치스코 교황의 바티칸-중국 협약: 종교적 타협의 그림자

2018년, 프란치스코 교황은 바티칸과 중국 간에 **'주교 임명에 관한 협약'**을 체결하며 중국과의 새로운 외교적 지평을 열고자 했습니다. 이 협약은 오랜 대립의 끝을 상징하며 새로운 관계를 모색하는 듯 보였지만, 그 이면에는 중국 내 가톨릭 공동체, 특히 지하 교회에 깊은 상처를 남겼습니다.


📜 바티칸-중국 협약의 내용과 그 영향

이 협약은 중국 공산당이 주교를 추천하고 교황이 이를 승인하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바티칸은 이를 통해 중국 내 가톨릭 신자들의 종교적 자유 확대를 목표로 했다고 주장했지만, 결과는 정반대였습니다.

중국 공산당의 추천으로 임명된 7명의 주교 중 일부는 신학적 자격이 부족하거나 부패 혐의에 휩싸였고, 심지어 일부는 사적인 문제로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이러한 결정은 가톨릭 교회의 전통적 가치와 교리에 어긋나며, 정치적 타협을 위해 교회의 원칙이 희생됐다는 비판을 낳았습니다.


⛪ 지하 교회의 탄압과 신자들의 절망

협약 체결 이후, 중국 정부는 지하 교회에 대한 탄압을 더욱 강화했습니다. 교황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지하 교회는 중국 정부의 승인 없이 운영되는 공동체로, 협약 이후 상황이 더욱 악화되었습니다.

허난성의 류 취안파(Liu Quanfa) 신부는 협약 이후 극심한 탄압을 받았습니다. 그는 정부의 감시, 생계 보조금 중단, 이동 제한 등으로 인해 신자들의 구호금에 의존해야 했습니다. 중국 정부는 그의 교구를 강제로 폐쇄하고 정부가 임명한 성직자를 배치하면서 신자들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습니다. 일부 신자들은 "바티칸이 우리를 버렸다"는 절망감을 토로했습니다.


🚩 홍콩 민주화 운동과 교황의 침묵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은 범죄인 인도법 개정안에 반대하며 시작되었습니다. 이 운동은 홍콩 시민들의 인권과 자유를 지키기 위한 평화적 시위였으나, 중국 정부의 강경 진압으로 많은 희생자가 발생했습니다.

홍콩의 요셉 젠(Joseph Zen) 추기경은 민주화 운동을 공개적으로 지지하며 중국 정부의 억압을 강력히 비판했습니다. 그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중국 공산당의 본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지하 교회를 배신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러한 상황에 대해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았고, 그의 침묵은 가톨릭 교회의 도덕적 리더십을 약화시켰습니다.


🤔 협약 추진 과정의 어두운 그림자

이 협약의 주요 추진자였던 테오도어 맥캐릭(Theodore McCarrick) 추기경은 성범죄와 부패 혐의로 논란의 중심에 있던 인물이었습니다. 그의 과거와 논란에도 불구하고 협약 체결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사실은 바티칸의 도덕적 정당성에 심각한 의문을 제기합니다.

맥캐릭은 오랜 기간 성범죄 혐의에 연루되어 있었으며, 이러한 인물이 협약 추진의 중심이었다는 점은 협약의 정당성과 바티칸의 윤리적 기준을 약화시키는 요소로 작용했습니다.


⚠️ 공산주의에 대한 무지와 타협의 대가

1937년 비오 11세 교황은 공산주의를 "잔인하고 뻔뻔스러운 허위의 메시아 사상"이라고 경고했습니다. 그러나 프란치스코 교황은 중국과의 협약에서 공산주의의 본질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 타협을 선택한 것으로 보입니다.

중국 정부는 협약을 이용해 가톨릭 교회를 통제하고, 성경을 공산당 이념에 맞게 재해석하려고 시도했습니다. 18세 미만 청소년의 종교 활동 금지와 같은 조치는 중국 내 종교적 자유의 심각한 후퇴를 보여줍니다.


📢 정치적 타협을 넘어서는 도덕적 리더십의 필요성

프란치스코 교황의 중국 정책은 정치적 타협을 통해 신도 수를 늘리려는 위선적 행태로 비춰질 수 있습니다. 이는 종교가 지켜야 할 자유와 정의라는 가치를 희생시키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중국 내 지하 교회 신자들, 홍콩 민주화 운동가들, 전 세계 가톨릭 신자들은 교황이 정의와 인권을 위해 목소리를 내주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제 도덕적 리더십을 회복하고, 탄압받는 신자들과 함께하는 정의의 목소리를 높여야 합니다.

계속되는 침묵은 신의 응답을 기다리는 것이 아닌, 신의 뜻을 외면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